💬상상법 / 김현승
나무 위에는
나무의 뿌리를 보고
가끔 그 뿌리에 붙은 굼벵이도
보아라.
4월은
5월보다 먼저 오는 달이다,
그러나 4월은
5월이 간 뒤에도 오지 않는다,
영원히 안 올지도 모른다...그 피는.
돌을 주물러
떡을 만드는 거리.
이 기적의 거리.
그 떡을 먹고 돌이 된
만원버스의 시민들을 보라,
4월이 되면 개나리도 활짝 피는데...,
꽃은 겨울에 피고
열매는 사월에 진다,
4월이 벌판의 묘지를 돌아
다시 우리게로 가까이 다가올 때...,
김현승 시집 <<절대 고독>> (성문각, 1970)
고마리꽃 연가
-우수리강에서 영산강 삼내까지 / 배정빈
작은 개울가에 핀 꽃 같은 거야
개울가에 핀 고마리꽃 같은 거야
아버지의 작은 할아버지
남쪽 작은 개울가 순이의 시집가는 꽃가마 눈물로 보내며 흔든 저고리
만주벌판 말 달리던 뜨거운 노래, 총포에 재는 장약
하얀 손수건 붉은 손수건 좋아하는 손수건은 달라도 뜨거운 심장, 조국은 하나
낯선 우수리강 길목에서 댕기머리로 족보가 되는 것은
고마리꽃처럼
붉은 손수건 가슴에 안고 사라져 가는 것
일찍 깨어난 꽃은 꽃씨도 맺지 못하고
편지 한 통 없이 땅에 묻히는 것
차가운 칼바람 땅
혼이라도 석양 노을빛에 물드는 하늘을 헤집어 돌아오면
하얗게 부서지며 영산강으로 휘돌아 흘러가는 삼내,
남쪽 따뜻한 작은 개울가에 내려오리라
둘이 마주 손잡고 황새봉 아래 사랑하는 불씨 지피고
고마리는 밝은 꽃불로 피어나
구름을 밟고 올라가고 싶다 하늘하늘 춤을 추리라
개울가 흔들리던 눈물인 양 펄럭이던 흰 저고리같이
사방에서 일어서는 함성으로 산으로 올라가는 거야
고마리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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